배터리와 조직은 적절한 수준과 빈도로 방전과 충전을 반복해야 장수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가진 자원을 일시에 소모하면 배터리와 조직 모두 수명이 줄어든다.


 흔히 리튬 이온 충전지는 자주 충전하되 예전에 많이 쓰던 니켈 카드뮴 충전지는 완전방전을 해야 수명이 깎이지 않는다고들 했다. 이런 니켈 카드뮴 충전지에 대한 완전방전 미신은 벌써 30년이나 된 헛소문이다. 과학자의 입을 통해 나온 적이 없는 끈덕진 미신이라 할 만하다.


 니켈 카드뮴 전지를 포함한 충전지는 여러 면에서 인간적으로 다뤄야 오래 간다. 아래의 충전지 사용 원칙을 보면 오히려 2014년 한국의 인간 조직에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면이 많다.


■ 충전지 사용 원칙
    1. 과충전하지 말 것
    2. 과방전하지 말 것
    3. 사용 후 바로 충전하지 말 것
    4. 크기에 비해 전류용량이 많은 전지는 대전류로 급속 충전시키지 말 것
    5. 단위전지는 온도관리가 불가능하므로 지능형 충전기를 사용할 것
    6. 여러 종류의 전지를 섞어 쓰지 말 것
    7. 전지를 높은 온도에 보관하지 말 것
    8. 단위전지를 방전 후 충전하려면 개별방전이나 병렬 방전할 것


출처: http://blog.daum.net/hssoon78/6793099 (나머지 내용도 볼 만해요.)


 사용 후 바로 충전하지 말라는 원칙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배터리 말고 자동차에도 비슷한 원칙이 있었던 듯싶다. 뭔가의 수명을 갉아먹지 않으려면 보편적이지는 않더라도 맥락이 통하는 원칙은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한 번 넣으면 몇 달은 맘 편히 쓰는 제품이 아니라면 일회용 전지를 쓰는 게 효율적이지만, 그 효율에도 간과한 점이 있다. 어린이 장난감 같이 몇 달 정도 쓰고 처분할 물건에나 일회용 전지를 쓰지, 반영구적으로 쓸 RC카[각주:1]에는 충전지를 쓴다.


 인간 조직도 마찬가지다. 경영진이 기업의 기대수명을 어떻게 보느냐의 판단근거 중 하나는 직원을 충전지와 같이 소중히 여기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백년기업을 꿈꾸면서 직원을 한 번 쓰고 버리려는 건 모순이다. 애초에 먹고 튈 심산이거나 자신을 봉건 영주로 여기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각주:2]

  1. 취미가의 희망일수도. [본문으로]
  2. 아니면 그냥 멍청하거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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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조직은 기존의 일을 하는 데에만 효율적이므로,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그 일을 잘 하는 다른 조직을 끌어들이는 편이 훨씬 낫다.


 대기업의 생리를 보면 익숙한 업종의 확장은 잘해도 생소한 업종이나 기술의 신사업은 거의 못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렇다. 내부에 엄청난 역량을 지닌 인적자원이 마침 있었다는 행운이 아니고서는 필패였다고 할 만하다. 의사결정의 근거만 만들다가 신사업의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경우가 태반이라고 본다.


 때문에 서양에서는 기업 M&A가 흔했고[각주:1] [각주:2], 이를 잘 활용하여 발전한 회사가 많다.[각주:3] 반면 한국 기업은 일단 내수에 있어서는 정부의 비호 아래 잘 나눠진 시장의 파이를 독과점하는 데에 너무 익숙하다. 신사업, 엄밀하게 말하면 리스크가 큰 신사업을 시작하는 경험이 없다시피 하다.[각주:4]


 이렇게 기초체력이 부족한 와중에, FTA[각주:5]니 인터넷[각주:6]이니 블루오션이니 하는 워낙 큰 변수들이 계속 등장하는 형국이다. 업종을 망라하여 경쟁자보다 더 재빨리 대응할 수단이 필요하다. 돼지정육이 저 먼 유럽에서 멀쩡히 건너 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나눠 해먹던 가구시장을 글로벌 기업 이케아가 뒤흔들며, 나이키의 경쟁자가 닌텐도라는 류의 이야기는 이제 새롭지도 않은 세상이다.


 내부에서 성장한 인력만으로 이런 변화무쌍한 세상을 헤쳐나갈 가닥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더구나 수출시장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내수시장에 들이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었다. 수출만을 위해 겁도 없이 덥석 덥석 체결했던 FTA들은 독과점에 기대어 소홀히 해도 좋았던 내수시장을 위협할 것이다.[각주:7]


 하루라도 빨리 유망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적당한 가격에 인수하여 명실상부한 전략의 한 축으로 키워야[각주:8], 내수시장을 지키며 나아가 수출시장에도 숨통을 틔운다. 지금까지의 버릇처럼 느릿느릿 정부 눈치만 보면 될 일이 없다. 망하는 일만 남는다. 여전히 성장을 염두에 뒀다면 다른 길이 없다.

  1. 잘하는 기업으로 키우기보다 잘하는 기업을 사는 게 쉽다. 단기적으로야 비용이 더 들기는 하겠지만 돈을 갖다 버리고 무마하는 것보다는 낫다. ※ Risk hedging의 관점이 달라서 국내기업이 M&A를 잘 하지 않는 수도 있다. 내부자원만 써서 돈 덜 들이고 신사업했다 망하면 표가 많이 나지 않게 수를 쓸 수 있지만, 인수했다가 실패하면 명시적으로 표가 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소견으로는 M&A 쪽이 신사업 성공확률이 높다고 본다. 이걸 누가 잘 알았으면 좋겠다. 대체 누굴 대상으로 표가 나고 안 나고를 따지는 건가? [본문으로]
  2. 부담 없는 친한 사람하고만 일하고 싶어하는 거야, 순응 잘하는 인력만 고집했던 한국 대기업 뿐만 아니라 서양 대기업이라고 달랐겠는가? 단지 서양사회에서는 우선순위가 분명했기에 성과를 위해서 M&A에도 적극적이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3. 우리가 이름을 아는 외국 기업은 전부 그렇다. [본문으로]
  4. 한국 내수시장에서 문어발 확장은 리스크가 컸을까? [본문으로]
  5. FTA로 인한 나비효과 중 한 예가 지적재산권. [본문으로]
  6. 대표적으로 아마존. [본문으로]
  7. 법이 새로 생기거나 바뀐 것만 해도 몇 건인가? [본문으로]
  8. 위법성을 저울질하며 경쟁적인 서비스를 따라 만드는 맨땅에 헤딩하기가 여전하다. 인수해서 보완해 나가면 그만큼 시간을 절감하여 더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만들게 될 텐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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