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P와 EIS의 구축 적기

BI 2014/08/18 02:22

 얼핏 생각하면 ERP 안정화 이후에 EIS를 구축하는 게 수순이겠지만, ERP의 분석단계부터 EIS를 감안해야 EIS가 본질에 충실해진다. ERP 따로, EIS 따로 구축하면[각주:1] EIS에서 쓸 데이터가 생각보다 훨씬 적다. 아예 없다면 깔끔하게 ERP 보강으로 EIS 구축 프로젝트를 시작하겠지만, 정말 묘하게 데이터는 있는데 자동 갱신이 기본인 EIS 입장에서는 가져다 쓰기 힘들도록 8% 부족한 데이터만 그득하다.


 ERP 구축도 허덕이는 판국에 무슨 EIS를 논하느냐고 타박할 만도 하지만 ERP의 취지를 생각하면 허투루 넘기지 말아야 할 사안이다. 지극히 단순하게 얘기하면 ERP는 공정한 관리회계를 위해 하며, 관리회계는 시의적절한 의사결정을 위해 한다. EIS는 시의적절한 의사결정을 위한 지표[각주:2]를 제공한다.[각주:3] 이 지표들은 회계뿐만 아니라 각 분야를 망라하지만 결국 관리회계로 귀결한다. 때문에 ERP와 다른 레거시 시스템의 데이터로 지표를 산출하지 못함은 ERP의 존재의의에까지 상처를 준다.


 EIS는 ERP보다 늦은 오픈이 불가피해도 ERP와 같이 요구분석을 시작해야 마땅하다. "그거 어차피 엑셀에서 조정[각주:4]할 수 밖에 없어요.", "마감이 끝나야만 정확한 데이터[각주:5]가 나와요."라는 장벽은 버겁기만 할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ERP 구축 때 손 놓고 있으면 나중에는 손 쓸 도리가 없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EIS의 터를 잡아야 나중에라도 EIS를 번듯하게 재정비할 만하다. 굳이 ERP를 한다면 좀 더 신경 쓰는 게 낫다.

  1. 이게 태반. [본문으로]
  2. KPI라고 하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단 지표라고 부르겠다. [본문으로]
  3. 아직까지 ERP의 리포트를 뒤적이는 임원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본문으로]
  4. 사기친다는 얘기는 아니다. [본문으로]
  5. 그래도 일보가 있다면 일보 수준의 정확도만 보이면 되지 않을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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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의 목표를 검색하면, "조직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일체의 과정"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이 정의를 따르면 기업경영의 목표는 "기업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일체의 과정"이겠다. 그렇다면 기업마다 경영의 목표가 다르다는 얘기인데 내가 아는 현실을 빗대어 보면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대기업만 놓고 봤을 때[각주:1] 기업경영의 목표로서 주주가치 극대화[각주:2]가 많이 회자됐다. 우리나라는 흔히 문어발로 비유하는 재벌이 융성해온 터라 얘기가 또 달라지긴 한다. 대개 한국 재벌은 막연히 주주보다는 오너 집안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도구라고 여겨지는데, 그렇게 결론 짓기에는 재벌의 일관성도 꽤 견고하다는 측면이 있다.[각주:3] 서구식과 한국재벌식의 경영 목표의 차이는 짚고 넘어갈 만하다.

 도덕적 해이에 따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서구식[각주:4]이나 한국재벌 모두 차이는 없었다. 갑을병정, 차떼기, 무보수야근 강요, 비정규직 양산 등 대한민국의 현실에 질렸다면 서구식이 얼핏 깨끗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저 유명한 엔론은 물론, 이름 한 번 들어봤을까 말까하지만 꽤 많아서 놀라울 정도인 다국적 기업들의 범죄에 비해 한국기업들의 범죄규모는 새발의 피 정도다. 윤리의식의 차이인지 기업규모의 차이인지는 몰라도 규모에서 차이가 나기는 난다.

 더불어 대한민국 재벌도 IMF 이후에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종종 천명한다. 주주가치 극대화의 대부격인 잭 웰치도 2009년에 때려 치운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낡은 개념을 2014년에 줏어 쓰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서구식과 한국재벌식의 차이가 좁아진 일례임은 분명하다. 정말 돈이나 버는 게 기업경영의 궁극적 목표였을까? 애초에 그 정도 깜냥의 창업자와 2세 상속자였다면 큰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라 판단한다. 정말 야비하기만 한 '사장'들은 재벌 소리를 들을 만큼 기업을 키우지 못했다.[각주:5]

 꼭 나쁜 사례를 들지 않아도 기업경영의 목표가 궁금해지는 사례는 많다. IBM은 분명 메인프레임 위주의 하드웨어 업체였지만 몇 년 전부터는 소프트웨어 혹은 컨설팅 업체로 불린다. 클라우드 개념이 정착하는 최근에는 다시 하드웨어를 만지작 거린다. IT 기업만 이런 것이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알 듯 모를 듯 하다는 듀폰은 농업, 자동차, 전자, 식품, 에너지, 화학, 자동차, 해양, 철도 등을 망라한 200살 넘은 장수기업이다. 경영학 수업에서 들었던 수직통합, 수평통합이 저렇게 거대한 확장의 단초가 됐겠지만, 저 정도의 다양한 기업의 집단을 보자니 역시 경영학 수업에서 배웠던 기업의 미션, 비전, 전략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미션 재정의가 드문 일은 아니지만 아래 사례와는 달리 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별 수 없이 지상낙원 추구라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이상을 미션으로 삼은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각주:6] 그렇다면 주주가치 극대화라고 불렸던 "돈이나 벌어라."라는 주문이 이런 기업의 퇴색한 정체성을 그대로 비추는 건 아닐까? 꼭 창업 초기의 정체성[각주:7]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만 절대선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행동기준으로서의 기업경영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해진 기업조직은 위험하다. 조직의 와해를 피하기 위해[각주:8] 마냥 돈만 버는 방향으로 흘러갈 게 뻔하다. 국가라는 경계가 무색하게 커져 눈치 볼 것 없는 기업이 무슨 짓을 할지 한계를 모른다는 건 참 무섭다.

■ 미션 재정의 사례
    1. Xerox: We make copying equiment. → We help improve office productivity.
    2. Standard Oil: We sell gasoline. → We supply energy.
    3. Columbia Picture: We make movies. → We make entertainment.


  1.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기업의 목표가 분명한 듯싶다. "OO로 가치를 제공하여 돈을 벌자." [본문으로]
  2. 최근 바뀌고는 있다고 하지만 뭘로 바뀌어 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본문으로]
  3. 물론 다들 건설사를 소유하긴 했다. [본문으로]
  4. 대표사례: 엔론 [본문으로]
  5. 사이비 종교 혹은 그 비슷한 것과 섞인 사례가 있기는 하다. 자신조차 속여 넘긴 경지의 사기꾼들이라 일반적이지 않다고 본다. 일제와 군사독재 부역 역시 특이한 경우이다. [본문으로]
  6. 비전을 선행개념으로 설정하고 미션을 끼워 맞추는 Visionary Company라는 말도 있긴 하다. (사례: 3M, Boeing) [본문으로]
  7. 초심이라는 말이 남용된 편이라 껄끄럽긴 하다. [본문으로]
  8.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조직을 지키려는 본능이 강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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