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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암을 진단하는 의사 노릇까지 한다는 기사가 난지 오래입니다. 진단 가능한 병이 한정적이기도 하고 인간 의사와는 달리 어이 없는 진단결과를 낼 때가 있기도 하지만, 결국 인공지능 진단기가 대세가 될 거라는 건 이제 다들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간 의사와 인공지능 보조 혹은 인공지능 진단기와 인간 보조가 될지 어떨지, 근미래의 모습조차 상상하기 힘듭니다만.

 

Later interpretation of machine breaking (1812)

최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기사에서 러다이트 운동을 언급하는 때가 많습니다. 신문마다 논조는 다릅니다. 기득권에 붙는 신문일수록 러다이트 운동 전후를 다루기보다는 실패만을 부각하곤 합니다. 일자리를 잃고 분노한 실업자들이 몇 해동안 공장에 침입하여 설비를 부쉈지만 별일 없이 진압 당했다는 식으로만 씁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의미 없지 않았고 대중은 처음부터 기계에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숙련자가 몰락하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는 언강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품질 좋은 옷감을 가지게 되기도 했기 때문일 겁니다. 공장설비를 때려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은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하며 두드러진 극악한 빈부격차와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이 촉발했습니다.

 

Photograph of the Great Chartist Meeting on Kennington Common, London in 1848

기득권의 편에서 서서 대중을 비아냥거리는 더러운 펜은 러다이트 운동을 사회변화에 쫓아가지 못한 어리석은 대중이 기계에 분풀이를 한 것이라고까지 폄하합니다. 당시 시민들이 공장설비를 부순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걸 부숴야 공장주가 타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눈부시게 사치하며 뻔뻔하게 임금체불하는 자본가에게 말은 먹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단결금지법' 같은 오늘날 기준으로는 반사회적인 법을 만들며 먹고 살게만 해달라는 약자를 잔인하게 짓밟았습니다.러다이트 운동 주도자들이 사형을 당하면서도 불꽃은 꺼지지 않고 차티스트 운동을 거쳐 갖은 악전고투 끝에 오늘날에는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으로 국민에게 주권을 있음을 천명합니다.

 

러다이트 운동을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불학무식한 꼰대들이 벌인 헤프닝으로만 여기는 관점은 너무나 안일합니다. 너무나 많은 아픔을 무시하는 셈입니다. 공익추구와도 거리가 멉니다. 그냥 기회주의적일 뿐입니다.

 

인공지능 패러다임은 효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여 누가 뭐래도 막지 못합니다. 이미 주류는 인공지능을 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무나 벌어진 경제력 격차를 줄이지 않고 나누지 않으면 신성불가침처럼 떠받드는 척하던 시장은 사라집니다. 대다수 사람은 전환의 혼란을 버티기가 힘듭니다. 자정작용을 바라기는 힘듭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나 젠트리피케이션처럼 내버려 두면 결국은 사람이 사라지고 말 겁니다. 국가의 존재와 역할이 해법으로 유일하다고 봅니다. 기술 발전의 간극, 불가피한 자원분배의 불평등을 국가와 정부가 메워야 이 다음 패러다임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너갈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역사를 곱씹어 봐야 합니다. 방향은 분명합니다. 당시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렸던 빈부격차를 줄이며 노동환경을 인간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입니다. 사회안전망을 갖춘다고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인공지능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도구라는 현실을 굳이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에 적대적이 되는 이유는 오로지 삶을 영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이 과욕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인공지능 러다이트 운동은 얼마든지 예방 가능합니다.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미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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